
여의도에 있는 콘래드 호텔로 호캉스를 다녀왔다. 지난해 미국에서 연회비 없는 아맥스 힐튼 카드를 만들었더니 혜택으로 보너스 포인트와 무료 숙박권 한장을 주었는데 소멸 일자가 다가와서 한달전 부랴부랴 예약을 했었다. 원래는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쓰려고 좀 아껴뒀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부득이 써야만 했다. 멀리 가기도 좀 귀찮고 이왕이면 5성급 호텔을 이용하고 싶기도 했고 무료 숙박권이라 이용에 제한이 있기도 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딱 하나 날짜가 비어 아슬아슬하게 한 예약이었다.

오전에 집안일을 좀 마쳐놓고 여의도로 향했다. 평일이었으면 직장인으로 엄청 분주했을 텐데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미리 좀 알아보다 예약해 둔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벼운 덮밥 형식의 일본 가정식 백반으로 맛도 있었지만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그릇이 귀여웠다. 먹는 맛도 있고 보는 맛도 있었다. 미리 예약했다고 사이드 메뉴도 서비스로 주고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IFC몰과 현대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지하도로 길게 이어진 길이 좀 미로 같기도 했지만 어차피 체크인 시간이 4시로 늦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유유자적하며 두루두루 천천히 둘러보았다. 현대백화점은 안쪽으로 빈 공간이 크고 넓게 있어서 그런지 답답하지 않고 쾌적했다. 이윤만 고려했다면 이런 구조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독특하고 개방감도 좋아 둘러보는 내내 피로한 감이 없었다.
층층을 둘러보다 블루보틀 커피가 있길래 예전 뉴욕 록펠러 센터 지하에서 마셨던 때를 추억하며 다시 한잔 마셔보기로 했다. 한국 법인이 자본잠식에 빠졌다던데 이 지점은 상관이 없는 건지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다. 커피를 시키고 받는데 한 20분은 족히 걸린 거 같았다.
힘들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좀 쉬다가 가전코너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전시된 대형 티비를 보면서 아내가 "이 티비 450만원인데 되게 좋다"며 이야기하길래 다시 보니 공이 하나 더 붙은 4500만원이었다. 놀라운 가격이 거짓말 같았고 내심 누가 살까 싶기도 한데... 아내는 멋쩍어했다. 450만원도 이미 비싼데 말이다. 아무래도 한국을 떠나온 20년 전에 내 가격 단위는 멈춰있는 건지 요즘 물가를 도대체 모르겠다.

시간이 되어 체크인하러 호텔로 갔다. 5성급 호텔 같이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로비가 고상하게 아름다웠다. 순서를 기다려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하고 주어진 객실로 올라갔다.
어떨지를 상상하며 문을 열어보니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 객실이 넓은데 안정감 있고 화장실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특히 한강과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뷰가 압권이었다. 객실 층이 높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무료 숙박권에 이 정도면 뭐 감지덕지였다. 아내가 만족하며 연신 좋다고 해주고 덕분에 좋은데 와본다며 치켜세워주니 마음속에 우쭐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일었다. 살면서 큰 욕심 안 부리고 소소하게 만족해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종종 이런 기회라도 마련해 봐야겠다.



샤워를 마치고 시원한 방에 누워서 예능을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몸을 감싸듯 폭신한 침대와 사각거리는 베개와 이불이 꿀조합이고 약간 서늘한 듯 시원한 바람에 몸이 고슬고슬해져서 쾌적한 게 마음도 덩달아 들떴다. 티비에서 나오는 튀르키에 여행 먹방을 보니 이번에 한국 올 때 잠깐 들렀던 이스탄불을 알아볼 기회가 있어 보는 내내 재밌었다. 꼭 한번 제대로 가고픈 여행지이다.
한참을 누워 쉬다가 해 질 녘에 다시 나왔다. 한강 둔치를 좀 다녀볼 요량이었지만 여전히 더웠다. 한 십분쯤 걸어서 한강 초입까지 갔는데 다시 땀도 줄줄 흐르고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금세 발길을 되돌렸다. 편의점에 들러 사발면과 하이볼을 사고 몰 식당가에서 낮에 눈에 띄던 싱가폴 음식점에서 두 가지 요리를 포장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놀랍게도 방이 다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물도 비누도 캡슐 커피도 모두 새롭게 리필이 되어있었다. 대부분 일박하면 이런 서비스는 없을 것 같은데 콘래드에서는 이런 편의를 다시 제공하니 산뜻한 방을 두번 받는 것 같아 기분도 좋았고 일해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또다시 샤워하고 사 온 음식과 하이볼을 한잔하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포장한 음식은 양이 무척이나 적었지만 맛은 정말 좋았고 함께 끓여 먹은 사발면은 한강라면 부럽지 않았다. 역시 라면은 실패가 없다. 배도 점점 부르고 한강 야경으로 멍 때리면서 술 한잔을 더하니 흐뭇하게 취기가 돌았다. 욕조에 물 받아서 몸 좀 담가볼까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양치만 겨우 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새벽같이 운동을 하러 피트니스 센터에 갔더니 이미 만원이었다. 주변에 회사가 많아서 그런 건지 다들 출근 전에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하긴 '나도 증권회사 다닐 때 엄청 일찍 출근을 했었지...'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한 시간 정도 운동하고 돌아와서 어제 못한 탕목욕을 하니 피로가 풀리는 건지 쌓이는 건지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마음은 한숨 푹 더 자고 싶었는데 오전에 다음 일정이 있어 아쉽지만 일찌감치 일박 호캉스를 마무리하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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