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권을 읽고 나서 선릉과 정릉에 직접 가보고 싶어 길을 나선 참이었다.
젊어서 직장을 다닐 때 강남으로 출퇴근을 해서 선릉과 정릉 앞을 수십 차례 지나다녔지만 방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도 없었고 부끄럽지만 선릉과 정릉이 누구의 능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지하철 2호선의 역으로만 내게 인식되었던 그곳을 유홍준 선생님의 책에 힘입어 방문하게 된 것이다.
서초에서 볼일을 본 후 교대까지 천천히 걸어오다 지하철에 올랐다. 원래는 강남의 변천사를 유유자적하니 느끼면서 느긋하게 도보 여행을 즐겨보려 했으나 30도 넘어서는 불볕더위에 금세 마음을 접은터였다.
한 10여 분 후 선릉역에 내려 높은 빌딩숲 속을 헤쳐 가다 보니 회색빛 사이로 푸르른 녹음의 섬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어귀로 접어들어 입구를 찾다 보니 담장 너머로 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표소에서 성인 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도심에서 숲으로 살며시 접어들었다.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했던 주변이 일순간에 사라지며 평화롭고 조용한 서사가 시작되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부터 죽은 자의 세계로의 타임슬립 같았다. 입구안쪽으로 놓인 벤치에는 어르신 몇 분이 더위를 피해 옹기종기 담소를 나누고 계셨고 풍성한 나무 그늘과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한낮의 더위를 조금은 누그려 뜨려 주었다.

안내도를 찾아 나의 위치를 살펴보다가 먼저 정릉을 보고 선릉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유홍준 선생님이 추천하신 선릉을 먼저 보는 편이 좋을 듯도 싶었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좀 더 가까운 정릉 쪽으로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늘길로 천천히 한 5분쯤 가다 보니 정릉이 나왔다. 야트막한 높이의 왕릉과 정자각이 먼발치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정릉은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능이다.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1506년 반정으로 이복형인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대장금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때이다.
중종에게는 세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첫째 왕비가 단경왕후, 둘째는 장경왕후, 셋째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문정왕후다. 단경왕후는 중종이 진성대군의 시절에 이미 혼인을 했고 반정의 성공으로 중종이 왕이 되면서 자연스레 왕비가 되었지만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의 반대편에 있어 역적으로 몰리면서 왕비가 된 지 단 7일 만에 폐위되었다. 이후 신씨는 인왕산 아래 서촌에 살면서 중종을 향한 그리움을 전하기 위해 다홍치마를 산자락에 펼쳐 놓았는데 이게 바로 인왕산 치마바위의 유래라고 한다. 둘째 왕비인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단명하였고 뒤를 이은 계비가 바로 문정왕후이다.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른 뒤 8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사실상 왕권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였다.
원래 정릉은 둘째 왕비인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같이 위치하고 있었으나 문정왕후의 독단으로 지금의 자리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정왕후 사후에 지대가 낮고 터가 좁다는 이유로 문정왕후가 지금의 노원구에 있는 태릉에 따로 묻히면서 결국 왕과 왕비가 모두 따로 떨어진 단릉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몇 백 년의 외로움 때문일까 왠지 단출하게 보였던 정릉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선릉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왕릉 관리자가 지내는 업무공간이자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이 나왔다. 말끔한 미음자 구조의 건물이 낮은 산자락 아래로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딱히 재실이라기보다는 잘 지어진 한옥의 느낌이 물씬 났다. 들어가서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금 선릉으로 가다 보니 다시 아담하게 지어진 역사문화관이 나왔다.

들어서니 우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반가웠다. 한낮 땡볕에 돌아다니다 보니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선, 정릉에 대한 이야기와 가계도, 조형물 그리고 작은 영상실이 있었다. 딱 두 명이 앉을만한 정도의 영상실에선 조선 왕실의 국상절차, 왕릉의 내부구조, 왕릉의 제향이 몇 분 간격으로 연이어 상영되었다. 내부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땀을 식히면서 영상을 찬찬히 다시 볼 수 있었다. 임금님의 국상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렸고 왕릉의 조성은 엄청난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고 모든 정성과 예의가 한데 모인 국가의 거대한 역점 사업이었다.
볼수록 대단하다 싶었는데 문득 역사에 동원된 사람들이 제대로 품삯이나 받고 일했을지 뜬금없이 궁금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땀을 식히고 선릉으로 발길을 향했다.


선릉은 조선 9대 왕인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과 그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의 능이 같은 산줄기의 다른 언덕에 묻힌 능이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이자 왕으로 추존된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인수대비) 한씨의 둘째 아들이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했으나 14개월 만에 승하하였고 예종의 아들(제안대군)은 너무 어리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은 병석에 있어 할머니 자성대비(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성종에게도 세명의 왕비가 있었으니 첫째 왕비는 권세가 한명회의 넷째 딸인 공혜왕후이고 둘째 왕비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 그리고 세번째 왕비가 바로 중종의 어머니이자 선릉의 주인인 정현왕후이다.
홍살문으로부터 어로를 따라 정자각에 다 달으며 선릉을 쭉 둘러보며 중학생 때 읽었던 박종화의 소설 <금삼의 피>를 떠올려 보았다. 역사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성종과 폐비 윤씨와의 사건, 이로 말미암은 연산군의 폭주와 잇따른 패정 그리고 장녹수까지.. 흥청이 망청이 되었다는 유래를 낳을 만큼 연산군이 세상을 버려버렸을지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일지는 모를 일이다. 성종은 하늘에서 아들의 피바람 보면서 측은하고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을지 아니면 어땠을지... 그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선, 정릉을 떠나오며 권력의 무상함과 세월의 무심함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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