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에게 흔하지 않은 하루 2건의 약속이 잡혀버렸다. 모름지기 만남은 하루에 한건씩 좀 기간을 두고 나누어 만나는 게 은퇴 생활의 무료함을 덜어줄 일종의 친구 찬스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급만남이 성사되었다.
점심 식사는 서울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학교 동기와 하게 되었다. 회현동에 볼일도 있고 해서 남대문 시장 근처 친구의 추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명동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오래간만에 시내구경을 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관광객도 많고 시장 쪽으로 볼일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거리가 분주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자리가 금방 차니 먼저 들어가 음식을 시켜 놓으란다. 사람수를 이야기하고 안내된 자리에 앉으니 찬은 이미 세팅되어 있고 어차피 점심 메뉴는 된장찌개 라면사리 백반 하나라 뭘 따로 주문할 필요도 없었다. 일인 일사리로 시켜놓고 기다리니 주인장이 사리 하나는 넣어서 하나는 따로 가져다주었다. 그러면서 일행이 금방 오냐고 묻길래 그렇다 하니 면이 금방 익으니 사리를 빨리 건져내야 하고 아니면 찌개가 너무 졸아서 안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뿔싸..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우린 같은 컨셉의 다른 가게에 있었다. 분명 어제 공유해 준 곳으로 왔는데 친구가 다른 가게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얼른 위치를 알려주고 빨리 오라고 했더니 근처라 금방 온단다. 작은 해프닝에 점점 불고 있는 라면과 쫄고 있는 찌개를 계속 뒤적이며 난감해하고 있으니 주인장이 다시 와서 육수 더 부어준다고 얼른 사리를 건지라고 채근했다. 이렇게 강제로 덜어진 라면이 앞접시에서 1.5배가 될 때쯤 친구가 도착했다.

인사도 잠깐 얼른 불어 터진 사리부터 해치우고 두 번째 사리를 넣어놓고 대접밥에 갖가지 반찬과 찌개를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 양념을 더해 밥을 비벼 먹었다. 한 그릇이 순삭이다. 하나 더 넣어 넣은 사리도 마저 먹고 찌개도 싹싹 비워 먹고... 뭔가 다 먹긴 했는데 좀 허전한 느낌이었다. 밥 양이 부족한 건지 내가 많이 먹는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기다림보다 짧은 식사가 끝났다.
된장찌개에 라면사리란 흔치 않은 조합이라 신선하긴 했는데 기대했던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바쁜 시간에 가격대비 평타 수준의 점심한 끼니를 찾는다면 괜찮을지는 모르겠만 굳이 찾아와 먹진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사장님은 무심한 듯 친절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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